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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이 처음으로 통했다고 느낀 경기

by looojj 2026. 1. 4.

전술이 통하면 절로 웃음이 나게 된다.


축구를 하다 보면 결과보다 더 오래 남는 경기가 있다. 크게 이긴 경기도 아니고, 극적인 결승골이 나온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경기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그날은 처음으로 ‘전술이 실제로 통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동호인 축구에서 전술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순간을 처음 경험했던 한 경기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서로 토의하고 각자 잘되는 부분을 설명한 대로 움직이고, 예상한 장면이 실제로 나오며, 누군가의 번뜩임이 아니라 팀의 구조로 경기가 흘러가던 날. 그날이 왜 특별했는지, 그리고 왜 그 이전까지는 같은 전술을 써도 통하지 않았는지를 사람의 시선으로 차분히 풀어본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전술의 긴 시간

그전까지 전술은 늘 설명 속에만 있었다. 전술 판에서 설명할 때는 완벽해 보였고, 말로 풀어 설명할 때도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경기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전술은 흐려졌고, 선수들의 선택은 제각각이었다. 경기하다 보면 항상 나오는 누군가에 의지하는 플레이는 꼭 나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전술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있었다. “이건 방향만 잡는 거다”, “경기에서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반복했다. 전술이 통한다는 생각 자체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한 경기는, 준비 과정부터 조금 달랐다. 특별히 새로운 전술을 가져온 것도 아니었고, 설명이 길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단순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설명보다 짧았던 전술 미팅

그날의 전술 토의는 유난히 짧았다. 포메이션은 익숙한 형태였고, 새로운 요구사항도 많지 않았다. 대신 몇 가지 기준만 명확히 했다. 심플하게 준비했다. “이 상황에서는 무조건 이렇게 간다”, “여기서는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같은 약속들이었다.

이 토론에서 느껴졌던 것은 선수들의 반응이었다. 장황한 설명보다는 각자가 원래 잘하던 플레이를 심플하게 하자는 주문을 하였다. 

경기 초반부터 느껴졌던 익숙하지 않은 안정감

경기 시작 직후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급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공을 가진 선수가 고개를 들었을 때, 예상한 위치에 동료가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수비 전환이었다. 이전 같으면 각자 판단으로 흩어졌을 상황에서, 비교적 일정한 간격이 유지됐다. 누군가 나가면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메웠다. 공간을 메우는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것이다. 설명을 길게 했을 때는 안 됐던 게 심플하게 준비하니까 나타난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전술이 나를 구속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고 있다’는 감각을. 어디에 있어야 할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판단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설명했던 장면이 실제로 재현되다

전술이 통했다고 느낀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명확했다. 경기 전 설명에서 예로 들었던 장면이, 거의 그대로 경기 안에서 나왔다.

측면에서 공이 전개되고, 중앙에서 한 명이 공간을 끌어주고, 반대편에서 타이밍 맞춰 침투가 들어왔다. 패스는 자연스럽게 연결됐고, 슈팅까지 이어졌다.

비록 그 장면이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벤치와 선수들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방금 그거다”라는 표정. 이 한 장면으로 전술은 더 이상 말이 아니라 경험이 되었다.

 

개인이 아닌 구조로 만들어진 경기 흐름

그날의 경기가 특별했던 이유는, 특정 선수가 눈에 띄게 잘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원맨쇼가 아니라, 비슷한 패턴이 반복해서 나왔다는 점이었다.

공격이 막히면 다시 정렬했고, 무리한 시도보다는 약속된 선택으로 돌아갔다. 실수가 나와도 구조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때 확실히 느꼈다. 지금 우리는 ‘운 좋게 잘하는 축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예상 가능한 축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기 후 대화가 완전히 달라졌다

경기 후 대화의 결도 이전과 달랐다. “누가 잘했다”보다 “이 장면에서는 이 선택이 좋았다”라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전술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여기서 조금만 더 간격을 줄이면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식의 보완 논의가 이어졌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했다. 전술이 통하지 않는 경기 후에는 구조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는 구조를 유지한 채, 세부를 다듬는 단계로 넘어갔다. 경기가 끝난 직후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던 사람도 본인이 무엇을 잘했는지 궁금해하는 게 느껴졌다. 심플함이 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전술이 처음으로 ‘현실’이 된 날

전술이 처음으로 통했다고 느낀 그 경기는, 스코어보다 훨씬 큰 의미를 남겼다. 그날 이후 우리는 전술을 믿게 되었다. 맹신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생긴 신뢰였다.

이 경험은 이후의 모든 기준이 되었다. 전술이 안 될 때도, “이 방향은 맞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조급하게 모든 것을 바꾸지 않게 되었다.

동호인 축구에서 전술이 통하는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날은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전술이 이론을 벗어나 처음으로 현실이 되었던 날. 그날 이후 우리의 축구는 분명히 달라졌다.